야닉 크래머 Yannick Kraemer와의 인터뷰

 

 

 

정말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야닉 크래머와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그는 미용을 발견하게 된 자신의 사춘기부터 Luis Kraemer 그룹의 컨셉 만들기 까지의 과정에 대하여 솔직하고 담백한 스토리를 들려 줬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한 부분을 우리와 공유하고 본인의 인생 철학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습니다. 

야닉, 미용사 일을 아주 일찍 시작했는데요, 이 분야에 대한 당신의 열정이 그렇게 빨리 나타난 거라고 볼 수 있는가요 ?

사실 처음부터 미용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건 아닙니다. 15살에 시작했으니 정말 일찍 시작하긴 했지만 솔직히 저의 선택은 아니었죠. 저는 나쁜 견습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장 우수한 학생도 아니었어요. 미용 분야를 선택할 때 진로 상담분들이 저에게 손으로 하는 직업을 추천 해주셨고요. 그 당시 사람들은 시골에서 견습을 하는 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알자스 북쪽 Wissembourg 근처인 Hatten에 미용실을 하고 계셨고 저는 가족업을 물려 받는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였고 저한테 미용사가 되라고 하셨을 때 그렇게 따랐죠. 그리고 미용사라는 직업이 흥미로워 보였어요 너무 육체노동 같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물어 보셨을 때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럼 미용에 대한 열정은 나중에 발견 한거네요.

요즘 젊은 분들은 한 분야에 대한 열정을 아주 빨리 발견하던데 저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견습을 담당하신 미용사분은 직업 정신이 투철한 분이셨고 그 분에게서 일의 즐거움을 배웠죠.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저의 개인 고객이 생기면서 제대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발견했죠. 사람들이 저의 작업을 통해서 행복해 지고 즐거워 하는 것에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어요. 이 부분이 저를 성장하게 했다고 할까요.

1977년 ~ 1978년에 견습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국가 자격증 (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을 취득했고 군입대 전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콘크리트 공장에서 잠깐 일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어요, 어릴적 친구들과 일할 수 있어서 였기도 하고요. 그 당시의 작업은 정말 힘들었지만 즐겁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부분에서 저한테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 때의 상사들도 저한테 공장 일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채셨고요. 저한테 그 분들이 무슨 공부를 했는지 물어보셨고 저의 미용 견습 과정을 설명하다가 공장 상사분들의 머리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Montauban의 낙하산 부대원으로 배치됐습니다. 재밌는 무용담인데요, 태어나서 비행기를 처음 탄날 낙하산을 부착하고 뛰어 내려야 했습니다. 적당한 고도에 도착하니까 문이 열리고 뛰어내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

제대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 미용실에서 일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셨습니다. 파리나 스트라스부르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꿈이 없진 않았습니다, 큰 일을 해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가족의 미용실을 변화 시키고 싶었어요. 마사지, 미용시술과 태닝을 할 수 있는 여성을 위한 아름다움의 신전 같은 공간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확고한 성격의 아버지께서는 저는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거라고 하셨고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Jacques Dessange살롱에 자리를 구해주셨고 저는 거기서 프랑스의 프렌차이즈 중요성을 깨달은 미용계의 첫 창시자 같은 존재인 Tony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미용이라는 직업을 마스터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Tony는 자주 저를 파리에 데려가 주셨고 그 때 이후로 열정적인 사람들과 자주교류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 당시에 미용은 큰 발전을 하고 있었죠 ?

1987년에 저의 첫 살롱을 오픈했습니다. 동시에 프렌차이즈에 소속이었기 때문에 아주 바쁜 기간이었어요. 80년대에 미용계의 프렌차이즈는 단 둘뿐 이었죠. 바로 Jacques Dessange 와 Jean-Louis David입니다. Dessange씨가 저한테 상당히 자주 하는 말이 있었어요. « 프랑스에 두 프렌차이저 말고는 자리가 없다 ! » 라고요. 순진하게도 전 그말을 믿었어요... 그래도 전 Dessange그룹에서 일해서 행복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 만족과 즐거움을 얻었고 15개의 살롱을 확장하기도 했어요.

Dessange 에서 저명한 인사를 만나셨죠.

네, Bruno Pettini가 Jacques Dessange그룹에서 예술 담당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만의 창의력과 프로 정신으로 엄청난 기운을 뿜는 사람이었어요. 탁월한 노하우 전수 방식으로 그는 그의 자취를 따르는 학생들의 우상이었고요. 현재 Bruno의 고아들이 정말 많습니다, 아무도 그를 대체하지 못했거든요. 그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을 하게 된거라고 확신시켜 줬습니다. 물론 그건 개인의 의견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제가 처음 이 분야에 들어오게 된 건 선택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업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됐다는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Dessange에서 보내게 된 시간 동안 제 자신을 발전 시키고 싶었고 큰 꿈을 꾸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Jacques Dessange-Bruno Pettini의 조합은 정말 중요했어요. Bruno 는 창의력과 감수성을 상징했고 Dessange씨는 아주 현실적이고 데카르트 마인드를 가진 비즈니스맨 이라서 확실한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이었죠. 두 분은 각자 꿈과 현실을 엮어 내어 지금의 Dessange그룹을 만든거에요. 그렇게 저를 포함한 프렌차이즈 소속의 수많은 미용사들에게 같은 여정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거죠.

그렇지만 독립하기로 결정하셨죠.

앞에 까지 말한 건 8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불행히도 1994년 Bruno 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저만의 그룹 컨셉은 2000년에 시작했지만 그의 죽음이 저의 결정에 영향을 준건 사실입니다. Bruno없는 그룹은 더 이상 창조와 현실주의 사이의 균형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난 후에도 몇 년 동안 그룹에 남았어요, 현실적인 결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저와 맞지 않고 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 남을 수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 40대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지만 제 가슴 안에서 불꽃이 타는걸 느꼈죠. 경제적으로 힘들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얻는 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정신적, 윤리적으로 정말 힘든 기간을 거쳤고 저의 브랜드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다행히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새로운 팀을 형성하고 저만의 그룹을 키우면서 제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고, 저의 파트너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었죠. 그렇게 균형과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 때 부터 그룹의 컨셉과 철학을 구상 하셨나요 ?

컨셉 구상을 할 때는 세가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 고객, 직원 그리고 미래의 파트너들 이죠. 제일 먼저, 저의 기대치에 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객의 기대치에 맞추는 겁니다. 전세계 적으로 규격화된 프렌차이즈의 단일함이 너무 우울하게 느껴졌어요. 어떤 분야든지 – 호텔, 레스토랑, 패션 그리고 미용- 항상 프렌차이즈들은 규격화 되어 있었고 그런 점을 다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품질 향상을 위해 창의력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 하기로 한거죠. 그래서 우리 그룹 안에서는 파트너 각자의 개인 공간을 만듭니다, 꼭 가정집에서 머리 관리하는 것 처럼요. 그럼으로 해서 고객들도 살롱의 독창성과 개별화된 취향을 접할 수 있죠. 저의 컨셉은 이미 존재하는 모델들을 똑같이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규칙만을 주시하되 직원들과 파트너들이 각자만의 스타일을 표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입니다.

그렇게 경쟁도 유도 하시는 거죠.

대부분의 프렌차이즈들은 중앙집권 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집행자라고 느끼게 되죠. 그래서 전 우리 그룹 안에서는 모든 파트너들이 새 컬렉션에 참여하고 컨셉을 발전하는데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프렌차이즈 살롱 구조로서는 새로운 방식이죠. 그렇게 다른 그룹들의 방식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겁니다. 동시에 프렌차이즈의 기본 장점은 공유합니다. 특히, 단 하나의 브랜드에 속하는 것과 통일된 정체성과 관심사를 갖고 일하는 점이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한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방식도 공유합니다. 또한, 우리 그룹의 축 이라고 할 수 있는 트레이닝도 잊으면 안됩니다. 그룹 K의 예술 담당인Laure Mentré나 Jean-Claude Lebeau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트레이닝에 참여해 주면서 노하우, 기술을 가르쳐 주고 우리 그룹의 이미지를 굳게 다지는 거죠.

단일화를 비난 하시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빈곤해 진다고 생각해서 인가요 ?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많은 이들이 저처럼 단일화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Luis Kraemer그룹만이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문제가 정말 심각한 이 단일화라는 현상에 반대하는 겁니다. 저의 분야에서 조용히 싸우며 고객들에게 또 다른 선택권을 줄겁니다. 미용에 우선적으로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우리 살롱에는 아름다움과 휴식의 공간이 존재하죠. 점토 조각상, 원목, 장식과 향을 두는 이유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휴식과 미의 신전을 만들고자 하는거죠. 그렇게 우리의 모든 서비스 (샴푸, 케어 그리고 마사지)를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부드러움과 꿈의 세계로요.

 

Emmanuel Abela가 진행하고 정리한 인터뷰